태국 방콕 3주 워케이션 회고
이렇다 할 것 없이 워케이션 3주가 끝나버렸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역을 옮기니 갓생 유전자(?)는 전멸하다시피 해서, 이렇다 할 만한 기록이나 성과는 없다.
그리고 지금 귀신같이 몸이 매우 아프다.. 워케이션 다녀오신 분들 후기를 들어보면 다들 아프시던데, 진짜인가 보다. 시름시름..
다만 처음에 다짐했던 것처럼 큰 목적 없이 가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에 반해 깨달음을 엄청 많이 얻었다) 200% 달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디가 좋았고 즐거웠는지도 얼른 쓰고 싶은데... 힘이 잘 안난다. (자랑도 힘 내서 하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우선은 워케이션을 하면서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아쉬웠는지 회고를 해보자.
잘한 점
- 맛있는 호텔 카페라떼를 원없이 사먹은 것
- 많이 많이 푹~~~ 잔 것. 거의 11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잠이 엄청 잘 왔음
- 휴가를 많이 낸것
-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마음껏 마음을 나눈 것
- 신나는 환경, 편안한 침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등지고 일할 땐 일한 것
- 택시 대신 지상철을 타고 다니면서 단순 여행이 아닌 삶을 살아본 것.. 사실 트래픽 잼이 장난아니긴 했다
- 좋았던 공간 두번이상 가기... 아이콘시암의 멋진 야외정원, 강이 보이는 스타벅스가 최애 플레이스가 되었다
- 선착장에서 공짜 야경 친구들과 함께 바라보면서 떠들던 모든 시간들
- 전망대 다른 곳 두번 간 것. 그리고 두번째 전망대에서 약 30분간 쌍무지개 뷰를 독점한 것. 다른 사람들은 노을에 한눈팔려 있었다 크큭
- 힘들어도 육교 꼬박꼬박 넘어다니면서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하기
- 막주에는 열심히 일한 것 (열심히 놀았니? 그럼 이제 일해야지)
- 친절한 호텔 사람들, 도어맨 아저씨, 나 라떼에 with no sugar 시키는거 이제 거의 다 외운 카페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점. 다들 정이 들었는데 사진이라도 한방 찍을걸.. 이건 아쉬운 점이다.
아쉬운 점
- 초반 에어비앤비 사태(?)로 사흘을 화만 박박 내다가 날린 것. 그마저도 추억이겠지
-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은 것.. 그래도 싸고 맛있었어
- 그래서 마지막에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로컬 가게가 그 배달음식집이었다는 걸 깨달았음... 그런데 거의 두배 가격주고 배달시켜먹은 걸 깨달음 (그래봤자 4-5천원 꼴이긴 했다. 그래도 로컬 정취 느끼면서 먹을걸)
- 수영을 한번밖에 안한 것
- 느낀 하루하루 감상을 기록하지 않은 것, 어떻게 다 기록하겠냐만은..! 그래도.
- 그렇게 돈을 아끼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수하물이 0kg라는 걸 깨닫고 16만원 공중분해. 에어부산 진짜 가만안둔다..
- 산책이나 운동 좀 할걸.. 통통해졌다
짧은 감상
돌아보니까 정말 8월 한달간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ㅋㅋㅋㅋㅋ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8월의 마지막 날인데, 8월 진짜 맵다.
돈을 가장 많이 흘린 한 달이 아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깨달은 점이 많아서 그걸 높이 사고 싶다. 돈 주고도 못할 경험도 많이 했고, 내 마음이랑 친해지는 시간도 여럿 있었다.
워케이션 가기 전 내내 "혼자 가는거야?" 라는 우려 섞인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집에 혼자 있을때보다 사람을 더 많이 만나서 활기찼다. 오늘만해도 집 밖을 한번밖에 안나갔는데, 방콕에서는 그래도 두번 이상은 나갔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호텔 와이파이가 구려서 코워킹 스페이스로 꾸역꾸역 나가게 된게 고마울 정도다. 사실 모니터는 조금 더 편하다 정도지 노트북만 해도 일하긴 충분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
나도 몰랐던 내모습
무형에 돈 쓰길 두려워하다니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느낀 건, 나는 무형의 어떤것에 돈 쓰기를 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가방을 사거나, 3만원짜리 인형을 사거나, 7천원짜리 인생네컷을 4만원치 찍거나, 밥 먹는건 그렇게 아까워하지 않지만 (먹으면 사라지는데도 말이다) 투어를 하거나 마사지를 가거나 전망대를 가는 데는 몇번이고 고심하는 나를 발견했다.
더 정확하게는, 남이 아닌 혼자서 하는 무형의 어떤것을 사길 매우 고민하더라. 엄마랑 함께하는 디너크루즈,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사지, 전망대에는 10만원씩 턱턱 쓰는데 혼자 어딜 가는데 쓰는 2-3만원은 되게 망설이는 걸 발견했다. 이게 왜그럴까 고민해보면 혼자 있을땐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걸 굳이 어딜가서 돈써서 경험해서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인 것 같다.
널..좋아해.. but! 널 싫어해..
천성적으로 누군가와 (아무나 말고, 아주 잘 맞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매우 신기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와 맛있다!" 멋진 걸 봐도 "와 멋지다!" 같이 해야지 행복이 두배 세배 증폭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혼자서 혼잣말 해도 그렇게 신나지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2시간 이상 집중시키는 사람은 많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ㅋㅋㅋㅋㅋ) 멀어져.. 아니 멀어지지마...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두고 싶지 않아하는 고양이형 인간.. 바로 나.. 최고 하루 루틴은 즐겁게 놀고 각자 방에 들어가서 휴식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과 하루종일 놀고 내 방에서 밤까지 영화보다가 각자 방으로 가는 게 참 좋았다.
내가 필요했던건 사실 자기계발이 아닌 환기
혼자 한국에서 살때는 자기계발에 미친 인간처럼 굴었다. 지하철을 타면 무조건 유튜브 대신 말해보카(영어 공부 앱)로 공부했고, 저녁에 할일없을때 유튜브 넷플릭스 보는 나자신이 싫어서 책을 읽거나 스터디에 미친듯이 몰두하기도 했다. 블로그도 자기계발의 일환이었고, 미리캔버스로 소소 부업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운동도 태릉선수촌 선수처럼 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직장에서 풀리지 않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와 공간에 대한 답답함을 그렇게 풀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권태인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 거였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쇼펜하우어 아저씨가 인생은 권태와 욕망을 반복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진짜 딱 그말에 동감하는게 지금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권태롭고 싶다. (ㅋㅋㅋㅋ)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널널하던 시간에 무한한 권태를 느낀 예전이 100년 전 같이 느껴진다.